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간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냥 말 없이 그를 노려보다가 거실로 나서면, 뜨끈뜨끈한 콩나물국과 밥이 야무지게 차려져 있었다. 이걸 먹고 가, 말아. 고민하다가 왜인지 자기도 쿨해져야 할 것 같았다. 첫키스까지 들킨 마당에 이런 것까지 얻어 먹고 가면 쿨하지 않잖아. 괜히 쪽팔리잖아. 뒤를 돌아 김민규를 올려다 보았다. 너 수업 날 아는 척 하지 마라. 어제 일은 없던 거야. 옷은 알아서 돌려줄 테니까, 나한테 말 걸지 마.
삐진 거 아니다. 정말 아니다. 석민아, 석민아 그렇게 오지게도 부르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쿨하게 택시를 잡았다.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려 왔다. 돌아 보니 석민의 옷을 들고 있었다. 아 씨. 저건 가져와야 했었는데. 그래도 모른 척 기사님께 그대로 가 달라고 했다. 저 학생 엎어졌는데, 괜찮은감. 기사님의 말에 뒤를 쳐다 보니 돌부리에 걸렸는지 엎어진 걔가 엄청 아파하고 있었다. ...꼴좋다. 동시에 좀 안쓰럽긴 한데 역시 혼자만 첫키스인 건 열이 받았다. 동시에 분명 걔는 어제... 여튼, 집은 거기서 걸어봐야 이십 분 걸리는 데도. 굳이굳이 택시를 타고 괜히 또 뺑뺑 돌다가 집에 도착하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그대로 씻지도 않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어차피 전공 날 봐야 하는 얼굴이었다. 석민은 첫 날 부터 수업을 쨀까, 혹은 휴학을 때릴까 고민하다가. 택시 뒤에서 엎어져 아파하던 얼굴을 떠올리곤 결국 일어났다. 연고와 밴드, 그리고 그의 옷을 챙겨 백팩에 밀어 넣었다. 전공 강의실에 도착하면 이미 도착해 있던 김민규가 용케 이석민을 발견했다. 그에게 다가오려 하면 노려 보고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잔뜩 꼬리 만 개처럼 쳐다만 보고 있더라. 그게 꽤 귀엽... 지 않아. 뭐가 귀여워.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빤히 쳐다 보고 있는 눈길에 먹었던 아침밥도 체할 것 같았다. 그가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고 화장실로 향하는 것 같으면, 석민은 곧장 일어서 그의 책상 위에 옷과 약을 올려 놓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삼 분도 안되어서 자신의 옆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석민아. 부르는 소리에 이석민은 이걸 씹어 말어, 고민을 했다.
무시한다.
무시하지 않는다.